카미노

10월 22일

*고니* 2013. 3. 11. 13:49

10월 22일 금요일

아스토르가(Astorga) -> 폰세바돈(Foncebadon) 25km

 잠을 깨보니 11시 40분이다. 허걱, 벌써 깨다니. 완전히 긴긴 밤이 되겠구나. 밑에 아저씨가 가끔씩 코를 골고 신음도 하지만 수면을 방해할 정도는 아닌데, 왜 벌써 깼을까.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 걸까. 2시간 간격으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긴 밤을 보낸다.

 

 용만이는 깨우니까 감자와 계란을 삶고, 스프도 끓이고, 완전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겠다고 난리다. 어제 요리안하겠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덕분에 점심으로 먹을 에그 샌드위치는 제대로 준비됐다. 어제 아버님이 사오신 닭요리에 감자 포테이토에 스프, 야채샐러드, 바케트 빵까지 한 상 차려 먹으니 외국인들이 아침부터 너무 많이 먹는 광경에 놀라워한다. 아침은 임금처럼 먹고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말도 있는데 서양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여하간 난 배가 불러야 갈 수 있으니 꾸역꾸역 먹어주시고,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끝내니 8시가 넘어 있다.

 

 산티아고 길을 따라 도시를 빠져나가는데 그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큰 성당하며. 어제 광장만 구경하고 여기까지 안와본게 후회될 정도로 멋진 건물들이다. 아직 동도 트지 않아 어둡다보니 사진이 제대로 안 찍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해 도시를 떠나니 저 멀리 동이 터 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가로수와 전봇대가 멋진 광경을 방해한다. 이 이쁜 광경에 전선줄이 왠 말이냐고. 오늘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가보다.

 

 

 현정누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몇일째 계속되는 짜릿짜릿한 고통은 여전하지만, 수다의 힘인지 뒤처지지 않고 어느 정도 걸어간다. 한참을 가서 Santa Catalina de Somoza 마을에 들어선다. 당연히 첫 번째 bar에서 쉬어갈거라 생각했는데 앞서 가던 지영이가 보이지 않는다. 가버린 사람 쫓아가자니 힘들고 어찌하랴 남은 사람들이라도 쉬어야지.


“분명 다음 마을 bar에서 손 흔들며 쉬고 있을 걸요”


 내가 농담처럼 말했는데 다음 마을 El Ganso에 갔더니 진짜 그러고 있다. 이제는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대충 눈에 다 보인다. 지영이와 합류한 후 다음 마을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 도로 옆길을 따라 쭉 달려줬더니 1시 반이다.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에 발견한 bar에서 점심도 먹고 푹 쉬어준 후에 폰세바돈까지 산길을 올라간다. 라바날 델 카미노까지 도로 옆을 따라 걷는 평지길이었지만 이 후부터는 확실한 산길이다. 어제 많이 걸어서 걱정했는데 다들 잘 걷는다. 구라 지영이는 오늘도 컨디션 안좋다더니 1등으로 폰세바돈에 도착한다.

 

 

 다른 일행들은 다 도착했는데 민호와 소화누님, 어머니께서 아직이다. 아버님이 걱정이 되셨는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보시는데 전화가 온다. 라바날 델 카미노 마을의 성당에서 성가로만 하는 미사가 있다나. 그걸 보기 위해 하루밤 묵고 오겠다고 한다. 내일 어떻게 오실수 있을지 걱정이다. 라바날 델 카미노에서 폰세바돈까지만 5~6km, 여기서 내일 폰페라다까지만 27km다. 그러면 저쪽은 33km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건데, 그것도 산길로. 과연 올수 있을까? 일정도 촉박하신분들이 너무 무리하는거 아닌지 걱정된다.

 

 

 내가 읽었던 책에서 폰세바돈은 거의 무너져 가는 집들만 있는 폐허 마을로 묵기에는 안좋은 곳으로 쓰여있었다. 사실 내일 폰페라다까지 가는 거리를 생각안했다면 폰세바돈에서 묵을 생각은 안했을거다. 별로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마을로 들어설때 보이는 다 무너진 집들의 잔해들은 당혹감과 낯선 긴장감을 준다. 이런 폐허 속에 알베르게는 3개나 있다.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중 가장 비싼 Albergue Monte Irago에 짐을 푼다. 이런 곳에서 싼데 찾아갔다가는 배드벅도 그렇고 여러 문제가 생길것 같아 그냥 속편하게 제일 비싼곳으로 갔다. 그래봐야 8유로지만.

 

 워낙 기대를 안했었기 때문일까, 다른 지역의 알베르게에 비해 특별히 나빠보이지 않는다. 벽난로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운치 있고 더 좋은 것도 같고. 다만,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1개 뿐인건 조금 불편하다.

 

 저녁을 먹을 겸 다른 알베르게에 붙어 있는 bar로 가는데 어제 아스토르가에서 본 한국일행을 다시 만났다. 부산아가씨와 야구모자에 노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학생, 그리고 아저씨 한분. 처음에는 '아버지'라고 불러서 가족인가 했더니 우리처럼 길을 걷다가 만나서 일행이 된 사이였다.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 위쪽에 자리잡은 도네티브(기부제) 알베르게에 묵는다며 우리가 갈려고 하는 까페 분위기가 좋다고 정보를 준다. 부산아가씨가 ‘거기 진짜 짱이에요’ 그러는데 확실히 사투리 억양이 구수하다.

 

 들어가보니 장식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주 아늑하다. 음식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음식이 잘 나온다. 이런 외진 곳에서 순례자들만 상대하는데도 웬만한 대도시 레스토랑보다 괜찮다. 특이하게 박죽이라는게 있어서 먹어봤는데 완전 소금덩어리라 우웩이었던것만 빼면 말이다. 구라 세자매는 배부르다더니 후식으로 나온 치즈케익, 초콜릿 케익을 맛있다며 다 먹어치운다. 역시 여자들이란, 케익 들어갈 자리는 따로 있는게 확실하다.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와보니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가 하나도 안 말라 있다. 해도 나지 않은 흐린 날에 손빨래를 해서 널어놨으니 탈수가 잘 안된 빨래가 마르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레온에서 헤어드라이기를 사올걸 후회가 된다. 이 빨래감을 어떻게 가지고 내일 가나 걱정을 하는데 알베르게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벽난로. 저거다 하고 모두들 빨래감을 들고 벽난로 앞에 선다. 다들 어느 정도 마르자 그냥 침대에 널어놓고 자겠다고 올라가는데 보아와 난 끝까지 남아서 빨래를 말린다. 어차피 지금까지 고생한거 확실하게 말려야지.


“오빠, 양말은 뒤집어 널어놔야 빨리 말라요”

“뭐, 어때 그냥 말리지. 거의 다 말랐어”

“알려주면 좀 그냥 해요”


 보아가 결국 내 양말을 뺐어서 뒤집어 널어버린다. 이상하게 자꾸 보아 페이스에 말려들어간다. 산티아고 길을 걸은지 몇 일 안됐을 때였던가, 보아가 맛을 보라고 포크에 음식을 찍어 준적이 있다. 그걸 손으로 빼 먹었더니


“그냥 먹으면 되지 뭘 손으로 그래요”


구박을 한다. 지영이가 다시 또 주길래 구박받기 싫어서 그건 그냥 먹었더니


“와, 내가 줄때는 안그러더니, 지영이가 주는건 그냥먹고”


또 구박한다. 결국 그날 이후로 구라 자매들이 주는건 그냥 다 받아먹게 되버렸다. 이상하게 보아한테 길들여지고 있다고 해야하나, 자꾸 보아한테 휘둘려지는게 기분이 묘하다. 보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없이 나란히 서서 벽난로 불길을 바라본다.

 

 보아도 2층 방으로 올라가고 1층에는 빨래말리며 벽난로만 쳐다보고 있는 나와 식사를 하고 계신 일본인 카토 할아버지와 아일랜드에서 온 미켈씨 뿐이다. 노래도 불러가며 얘기꽃을 피우시는데 나이 차이도 있으신 두 분이 의외로 서로 잘 통하시는것 같다. 미켈씨 노래실력도 상당하지만 두 분 다 이 시간을 멋지게 즐기시는 모습에, 보는 나도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미켈씨가 한참 노래를 부르시더니 갑자기 내게 한국 노래를 한번 불러달라고 청하신다. 나야 모든 친구가 인정하는 음치중의 음치인데, 무슨 노래를. 순간적으로 용만이 생각이 난다. 노래 실력 확실한 쥬크박스에, 영어가 되니 미켈씨하고 대화도 잘되리라. 2층에서 쉬고있던 용만이를 강제로 끌고 내려오니,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면 구라 세자매까지 덩달아 합류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


 용만이가 고르고 고르다 부른 노래 강산에의 ‘라구요’를 구라 세자매와 내가 따라 부른다. 벽난로의 불길속에 한이 담긴 가사가 나지막히 울려퍼진다. 카토 할아버지와 미켈씨는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노래가 좋다고 하신다. 뜻은 몰라도 느낌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노래의 힘이다.

 

 카토 할아버지가 숫자카드로 마술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신다. 1부터 63중에 기념이 될만한 숫자를 하나 고르고 숫자가 잔뜩 쓰여 있는 카드 6장을 주면서 자기가 고른 숫자가 있으면 'yes' 없으면 ‘no'로 구분하라고 하신다. 카드를 보는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마술이 아니라 수학 조합이구나‘. 그냥 재미로 즐기면 되는걸 내 이성은 이걸 또 분석하고 있다. 어떤 방식인지 알고 있으니 신기하진 않지만, 카토 할아버지의 해석이 아주 재밌다.

 

 첫 번째로 지영이가 카드를 분류했는데, 카토 할아버지가 3이라고 숫자를 맞추시고는 여태까지 사귄 사람이 세명이라고 해석하신다. 지영이가 웃으며 맞다고 인정한다. 현정누나가 선택한 숫자는 32. 이 해석이 가관이었다. 미래의 남편 나이라나.


“어머, 내가 연하랑 결혼하는거야”


정말 현정누나다운 반응이다.


“누나가 연하랑...에이...결혼하면 뭐해요. 어차피 몇 년 못가서 이혼할텐데...”

“그게 대수야. 내가 연하랑 결혼하데잖아. 그것도 32살과....”


용만이의 실랄한 비판에도 현정누나는 그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연하랑 결혼한다는 말에 재미있어 한다.


“누나 노르웨이 갔을 때가 32살이었죠?”


대충 계산해보면 답은 나온다. 기념이 될만큼 중요한 숫자가 32라면 32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일테니. 누나가 32살에 노르웨이에 간 건 맞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때 있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나가 노르웨이로 떠날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건 너무나 가벼운 사람인데, 그 가벼움 때문에 현정누나가 안에 뭘 감추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내 차례가 되버렸다. ‘Memorial number'라는 카토 할아버지의 말씀에 생각한다고 한게 어떻게 그 사람 나이다. 그 친구도 올해로 벌써 서른이구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지. 카토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숫자를 정확하게 맞추신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내 미래의 아내 나이라고 하신다. 카토 할아버지, 그 친구하고의 연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요.


“30, 지영이가 올해 서른이잖아. 너 지영이 생각한거야?”


 어떻게 그렇게 날 놀릴 소재는 놓치지를 않는지. 현정누나 또 한건 물었다. 벽난로의 아늑한 분위기 속에 추억을 잠겨들던 사람을 확실하게 초쳐주신다.


“오빠, 혹시 그 사람 나이?”


내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으니, 보아가 넌지시 물어온다. 보아가 확실히 예리하다. 고개를 끄떡여 인정을 하니 보아도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보아에게는 내 마음이 보이는 걸까? 옛 사람을 떠올리는 날 보며 보아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잣아든 벽난로의 불길처럼 알베르게의 밤도 점점 조용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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