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10월 2일
론세스바예스->수비리
피레네를 넘어오는게 힘들긴 했는데도, 새벽부터 잠을 깨 버렸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2시 반. 침낭속에서 좀더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안온다. 뒤척이다가 결국 새벽 3시에 일어나 버렸다. 잠이 달아나 버렸기에 생장피드포르에서 받은 알베르게 위치가 적힌 종이와 카미노 앱의 정보를 비교하며 일정을 짜본다. 그냥 걷다가 아무데서나 자면 그만이지 하고 왔는데, 이렇게 순례자가 많을줄 몰랐다. 더구나 이리도 많은 한국인 이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일부러 한국 사람들이 없을것 같은 시기를 골라온건데 완전히 오판했다. 먼저 질러서 도망갈건지 아니면 천천히 걸어서 뒤쳐질지 아니면 그냥 같이 움직일지 결정을 해야 한다. 고민을 하며 숙박하기 괜찮은 알베르게가 많은 마을 위주로 일정을 짜보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하고 비슷한 일정이 되버린다. 카미노 앱은 31일 일정인데, 지영이가 가진 책자는 34일, 생장피드포르에서 나눠준 일정표도 34일로 짜져있다. 초반은 비슷하게 가다가 중반 정도부터 엇갈린다. 카미노 앱 일정대로 따라가다보면 결국 헤어지게 될테니 억지로 도망갈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진다.
일정표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는데도 이제 겨우 새벽 4시다. 6시 반은 되야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추워서 결국 다시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해 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5시 40분이다. 지하 휴게실로 내려가보니 서양 여성 2명이 짐을 꾸리고 있다.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바빠진다. 나도 모든 짐을 가지고 내려와서 배낭을 꾸리는데 어제 맡긴 세탁물이 세탁은 되어 있는데 탈수가 안되어 있다. 뽀송뽀송한 세탁물을 기대하고 맡긴건데, 10시에 전기가 끊기다보니 아예 건조기는 돌리지도 않은것 같다.
6시쯤 되자 전기가 들어와 직접 건조기를 돌리고 있는데 어제 그 여성 자원봉사자가 나타나더니 순례자는 쓰는게 아니라며 또 뭐라고 한다. 계속해서 ‘No peregrino'라고만 하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어제 돈을 냈는데 마르지도 않은 세탁물을 주고는, 정말 말이 안통하니 답답하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돌렸기에 중단하고 세탁물을 꺼냈다. 차라리 손빨래 하는게 속편하겠다.
아침 식사는 식당 2곳 중 한 곳 casa selina에서만 가능하다보니 순례자들로 바글바글하다. 아침식사는 3유로로 바케트 빵과 잼, 버터, 그리고 커피 한잔을 준다. 이런걸 먹는데 서양 사람들은 왜 비만이 심한걸까? 간에 기별도 안가게 생겼는데...
어제부터 아프던 골반쪽이 다시 걷기 시작하니 조금씩 통증이 온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오늘은 수리비까지만 가야 할 것 같다.
론세스바예스 마을을 나서는데 Santago de Compostela 790 이란 큰 표지판이 서 있다. 앱 정보로는 생장피드포르부터 775km 구간인데 여기 표지판은 론세스바예스부터 790이다. 어느 정보가 맞는걸까?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줄 알았는데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도로 옆 숲길로 화살표가 나 있다. 해인이는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더 이상 같이 갈수가 없다. 수비리에서 보게되면 보자고 했지만 수비리까지 21km, 도보로야 꽤 거리가 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얼마 안된다. 아마도 더 앞질러 가게 될테니 해인이는 더 이상 보기 힘들것 같다. 會者定離(회자정리). 어차피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다만 해인이가 가장 먼저 떠나가는 것 뿐이다.
도로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약 4km 정도 가다보니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주도로를 지나가는데 해인이가 기다리고 있다. 아까 헤어질때 못보겠구나 했는데 1시간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 해인이도 그냥 헤어지는게 아쉬웠는지 우리를 기다렸다고 한다. 다시 이별의 신파극 한번 더 찍어주시고 진짜로 헤어졌다. 단 이틀 같이 지냈을 뿐인데 다들 정이 많이 들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중간에 화살표가 마을 옆 목장으로 우회시킨다. 건물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가리비와 화살표를 못보고 그냥 도로를 따라 쭉 가는 순례자들도 꽤 된다. 올레길 원조라더니 산티아고 길도 사유지를 통과해서 가게 되어 있다.
남의 목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갑자기 오르막길이 나온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는 얕은 내리막의 거의 평지길인줄 알았는데, 중간에 고개를 몇개 넘어가야 한다. 내리막이라 안심하고 있다가 고갯길을 오르니 힘들다. 한참을 올라 언덕을 넘는데 언덕 정상에 과일과 빵, 음료수 등의 물건을 파는 차량이 있다. 순례자들을 상대하는 행상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더니 스페인이라고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과일이 개당 70센트. 유로화가 익숙하지 않다보니 이게 비싼건지 아닌지 감이 안온다. 어차피 배는 고프고 먹을거리를 살곳이라고는 이 행상밖에는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나나1개 사과 1개. 이게 오늘의 점심이다. 먹을거리도 무게가 나가다보니 배낭에 들어가면 짐이라 많이 살수가 없다.
언덕을 내려가 걷다보니 다음 마을이 나타난다. 점심때가 다되어서인지 마을에 있는 bar 앞에 많은 순례자들이 쉬고 있다. 어떤 간판도 레온싸인도 없이 문위에 달랑 bar라고만 적혀 있어 사람들이 없었다면 못보고 지나쳤을 거다.
아까 산 과일과 맥주로 요기를 하고 다시 힘내서 출발한다. 마을을 나서니 또다시 오르막길이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산 중턱 평지길에 무덤 하나가 보인다. 카미노 도중 돌아가신 일본인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다고 하더니 그건가보다. 무덤에 쓰여진 문구도 스페인어라 알수 없지만 일본인 성함 만큼은 알아볼 수가 있다. 무덤 주변이 넓은 공터라서 다들 쉬어간다. 나도 쉴려고 자리를 잡는데 한쪽 구석에 정호씨가 있다. 아침도 물에 곡물가루만 타먹고 일찍 떠난 사람이기에 한참 앞에 있을줄 알았는데 쉬엄쉬엄 왔나보다. 나를 보자 가방을 맡기고는 숲으로 들어간다. 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사 마셨는데 그때부터 속이 안좋다고 한다. 흔히들 밖에 나오면 아무생각없이 우유를 사 마시는데, 우유만큼 적응이 안되는 것도 없다. 특이나 스페인 우유는 거의가 다 연유라서 우유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탈이 난다.
이제 수리비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5-6km 정도, 1시간 반정도면 도착할테니 쉬지 않고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갑자기 숲이 사라지며 허름한 건물이 나오고 수비리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건물을 돌아가니 수비리로 들어가는 다리가 있고 카미노 표시는 다리 옆쪽의 샛길로 나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고 계속 갈려면 옆길로 가면 된다. 아직도 배낭 무게에 적응을 못해서인지 골반쪽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면 진짜 초반에 뻗어버릴 위험이 있어 무리하지 않기 위해 수리비로 들어간다.
수리비 입구의 다리가 옛날에 지어진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이어서 솔직히 중세 시대의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옛스러운 모습을 기대했는데, 다리를 건너자 마자 펼쳐지는 마을의 모습은 완전 신식 건물 투성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알베르게가 보인다. 수리비에는 알베르게가 3개 있는데 이건 몇유로짜린가? 앱 정보를 찾아보니 가장 비싼 알베르게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가장 싼 6유로짜리 알베르게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모를 때 고민하는건 시간 낭비다. 길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잡고 ipod으로 알베르게 이름 을 보여주니 길을 알려준다. 알베르게는 마을 주도로가에 있지만 카미노 길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순례자들이 아무 정보도 없이 찾기에는 어렵다. 모를 때는 그냥 물어라. 그게 덜 고생하는 지름길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용만이는 벌써 와서 짐을 다 풀어놓고 아버님과 어머니 자리까지 맡아놨다. 관리인이 영어가 안되는데 어떻게 예약을 했나 했더니
“훼밀리(family)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거에요. 그래서 마마, 파파 했더니 그제야 이해하더라고요”
마마, 파파라...졸지에 어머니는 완전히 용만이 어머님이 되버렸다. 나도 일행들 자리를 맡아놔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 아직까지 알베르게 자리가 여유가 있어 관둬버렸다. 어차피 관리인하고 의사소통도 안될텐데...
아무래도 일행들이 찾아오기 힘들것 같아 다리로 마중을 나간다. 새벽에는 어떻게 떨어져볼까 고민을 한참 하고선 지금은 못찾아오고 헤매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마중을 나가고 있으니 참 이게 뭐하는 짓인지...
민호와 지영이는 금방 따라왔는데 소화누님이 안보인다. 잠시후, 용만이 아버님과 어머니가 오셔서 물어보니 한참 뒤에 쳐져 있다고 한다. 초반에 우리 보조를 맞춘다고 오버페이스 하는것 같았는데 결국 문제가 된 것 같다. 산행에서 자기 페이스 유지가 중요한데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실수하셨다. 산으로 찾아 올라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거의 쓰러질듯한 표정으로 걸어오신다. 그래도 용케 산에서 뻗어버리시지는 않으셨다.
일행이 다 모였으니 이제야 맘 편히 쉴수 있겠다.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 Albergue de Peregrinos de Zubiri는 5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인데 건물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고 앞마당 왼쪽에 따로 지어진 예전에는 창고로 썼을 것 같은 건물에 따로 떨어져 있다. 샤워실도 좀 독특해서 보통은 격벽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은 격벽없이 샤워호스가 5개 쭉 늘어서 있다. 남녀 따로 샤워실이 있는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옆사람 알몸을 볼 수밖에 없는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민호가 머뭇거리며 말한다.
“형, 제가 좀 털이 많아요”
그래서, 어쩌라고. 털이 많으면 많았지 그런걸로 혐오감이라도 들까봐.. 그렇게 생각했는데, 녀석 벗은 몸을 보니 이건 완전히 짐승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털 많은 녀석은 처음 봤다. 다리는 둘째치고 배꼽부터 가슴까지 쫙... 외국인들도 이정도로 털 많은 사람이 흔치 않은데 녀석은 솔직히 그냥 짐승이라는 말밖에 안나온다. 털 많은 남자 좋아하는 여자들이 보면 그냥 넘어가겠다. 그 순간 민호 별명은 짐승으로 낙점됐다.
샤워를 하고 빨래감을 빨랫줄에 너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다 날라간다. 빨래집게가 없어 옷핀으로 옷들을 겹쳐서 빨래줄에 묶어버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리고 빨래집게보다 옷핀이 무게도 적게 나가고 유용하다. 걸어보면 안다. 카미노 길에서는 빨래집게 무게조차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버거워 진다는 걸.
이제 저녁만 해결하면 되겠다 싶어 나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뭔일이지 하고 나가보니 어머니께서 샤워실에 옷을 두고 나오셨는데, 지갑을 도둑 맞았다. 보통 돈을 나눠서 보관하는게 배낭 여행의 기본인데 어머니는 지갑에 몽땅 보관하셨다고 한다. 카드며 현금이며 모두 잃어버리셨다.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갑자기 당한 일에 어머니는 경황이 없으시다. 정말 얼이 빠지셔서 카드부터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신다. 관리인에게 가보지만 영어가 안통하니 대화가 안된다. 그래도 표정에서 뭔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순례자 중에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보신다. 다행히 프랑스에서 온 남자 한분이 영어, 스페인어 다 돼서 중간 통역을 해준다. 힘들게 대화를 해보니 마을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오늘 아침까지 마라톤에 참가할려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화장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누가 그랬는지 찾는다는건 힘들다고 한다. 우선 카드를 정지시키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고 신고는 해야 하기 때문에 용만이와 어머니가 경찰서에 가보기로 한다. 제발 잘 해결되야 할텐데 걱정이다.
소란을 뒤로하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아뿔사 오늘이 토요일이다. 카미노 길 위에 있다보니 요일 변하는 것도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토요일에는 슈퍼마켓도 오전만 여니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해먹을 수도 없다. 그나마 이곳이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이니 문을 연 식당이 있지 않을까하고 다리쪽으로 찾아가보지만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이 큰 마을에 문을 연 식당 하나 없을까 싶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큰 길을 따라 쭉 내려가본다. 알베르게를 지나쳐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다보니 문을 연 bar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bar 앞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늘어놓으며 장 비슷한 준비를 한다. 내일 마을에서 할프 마라톤을 하는데 그 준비를 하는 거였다. 덕분에 우리는 빵에 과자, 햄등 요기를 할 수 있는 음식거리를 장만할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야외 식탁에 둘어앉아 상을 차린다. 지나가는 유스케까지 불러 앉히고 오리손 산장에서 만났던 아가씨 2명까지 어쩌다보니 동석하게 된다. 자매인가 생각했었는데 노르웨이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동료였다. 나이가 조금 더 있어보이는 키 큰 분이 O현정씨, 그리고 다른 분 이름이 정말 특이했다.
“이 친구 이름은 한번 들으면 절대 안까먹어요”
현정씨가 궁금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이름이기에 그럴까 했는데 듣는 순간 의심했다.
“보아에요, 권보아는 아니고요”
외국에서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때문에 보아라는 이름보다는 성으로 자신을 밝힌다는 O보아씨. 정말 한번 들으면 잊어먹기 힘든 이름이다. 1년간 무급휴가를 받아서 세계여행중인데 동료 간호사중에 한분이 한달전에 이길을 걸으면서 추천을 해줘서, 프랑스 구경을 하고는 중동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왔다고 한다. 1년간 휴가라, 북유럽이 좋기는 좋구나.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데 용만이와 아버님, 어머니 그리고 통역을 해주던 프랑스인이 돌아왔다. 어머니가 자초지정을 설명하면 용만이가 영어로 통역하고 그걸 프랑스인이 다시 스페인어로 통역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어떻게 신고는 했지만 돈을 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선 용만이 아버님이 어머니께 돈을 빌려주시고 서울에서 어머니 남편분께서 용만이 어머니한테 돈을 갚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보니 이렇게도 해결책이 나온다.
용만이 일행에 프랑스인까지 합류해서 판이 더 커졌다. 그제서야 용만이가 프랑스인을 인사 시켜준다. 알버트 뭐라는 이름이었는데 줄여서 앨빈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일하다보니 여러 언어를 사용할수 있다고 하는데, 얼마전까지는 프랑스 포도 농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보헤미안 같은 사람.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언제나 웃음을 띈 얼굴하며 너무나 선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우리일행 4명에 용만이 일행 3명, 아가씨 2명에 유스케 앨빈까지, 11명이 모여 각자 가지고 있는 음식물을 꺼내 먹기 시작하니 나름의 만찬이 되버린다. 우리가 사온 빵에, 토마토 통조림, 아가씨들이 가져온 노르웨이 곡물 크로켓에 잼, 그리고 여러 잡다한 음식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앨빈이 가지고 온 포도주였다. 자신이 일하면서 직접 봉인했다는 포도주는 상표도 하나 안붙어 있다. 이걸 가지고 피레네를 넘어왔다니 앨빈도 대단하다. 아무런 상표도 안 붙은 병에 들어있는 보르도 와인이라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떪은 맛도 안나고 정말 맛있다. 시작은 미미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거의 만찬이 되버렸다.
대화가 흐르다보니 소화누님이 자기를 친구들은 ‘민폐소화’라고 부른다며, 이곳 올때 다른 사람들한테 폐 끼치지 말라고 했는데, 어린 친구들 도움을 받고 있다고 걱정을 한다. 평소에 잘 걷지도 않았고, 물집까지 잡혀 가장 늦게 오다보니, 우리가 중간중간 기다려주고, 알베르게 자리 맡아주고 하는게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용만이 아버님이 산악회 활동을 오래하셔서 산행초보 소화누님한테 걷는법, 스틱사용법, 호흡법등을 가르쳐 주신다. 그동안 용만이는 내게 하소연을 한다.
“우리 아버지가 절 여기 데려올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여기는 페레그리노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도와준데요. 스페인어 못해도 전혀 상관없다나... 그런데 와서는 용만아 가서 물어봐라, 용만아 좀 알아보고 와라 계속 그러시는데.. 아니 영어도 하나 안통하는데 뭘 어쩌라고요”
그동안 아버님, 어머니하고만 같이 다니다보니 어디다 말할데가 없었나 보다. 계속해서 분통을 터뜨리는데 웃음이 나온다. 역시 아버지와 아들 사이다. 절대 가까워질래야 가까워 질수 없는 사이.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관계. 누가 그랬다 아들은 아버지의 80%를 닮고 나머지 20%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형성된다고. 겉으로는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아버지를 걱정하는 용만이나, 내심 표현은 안하지만 용만이 걱정을 하는 아버님이나 전형적인 부자관계다. 그래도 설마 페레그리노란 말 하나로 모든게 통할거라고 진짜 믿고 오신건 아니시겠지?
알베르게 마당을 왁자지걸하게 만들던 저녁이 지나고 아버님의 제안으로 모두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간다. 나, 민호, 지영이, 소화누님, 용만이, 아버님, 어머니, 현정씨 그리고 보아씨까지 9명만이 처음으로 모인 자리였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들과 산티아고까지 함께 하게 될줄은... 일행들과의 최초 만남이 오리손 산장이었다면 우리가 뭉치게 됐던 계기는 수리비에서 어머니의 지갑 분실 사건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인연이란 참 묘하고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다더니 그칠줄 모르던 대화는 알베르게 문닫는 시간 때문에 중단되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용만이가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스포츠 마사지, 기 마사지까지 배웠고 어머니께서 음식점을 하실 때 아주머니들을 상대로 쌓아온 실력이라는데 손힘도 장난이 아니고 정말 제대로 마시지를 한다. 덕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느라 뭉쳐 있던 어깨가 풀렸다. 스페인 시골 동네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마사지를 받게 될 줄이야. 덕분에 오늘밤은 잘 잘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왔는데,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람 사는 정을 느끼는 시간이 되다니... 원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카미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