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9월 30일

*고니* 2013. 3. 11. 10:55

9월 30일

 싱가폴에서 파리까지 13시간의 비행. 무지하게 끔찍했다. 20~30분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머리는 멍하고 허리는 쑤셔온다. 흔한 말로 작살날 것 같다. 그나마 통로쪽 좌석을 예매했기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을 갔다오며 걷는게 도움이 됐다. 내 뒤좌석의 할아버지 한분은 양 옆에 아무도 없어서 좌석 3개를 점령하고 누우셨다.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던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비행기는 결국 파리에 도착했다. 예정된 7시보다 조금 빠르게 6시 34분에 파리에 착륙했다.

 

 내 짐은 바로 나왔는데 정호씨 짐이 안나와서 한참을 기다렸다. 파리 시내 약국에 가서 화장품을 기념품으로 사야한다고 하던데 시간도 없는 사람이 더 촉박하게 됐다. 나야 12시 10분 기차로 시간이 널널하지만 정호씨는 10시 10분 기차. 시내 약국까지 들렀다가 다시 몽빠르나스 역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촉박한 시간이다. 거의 모든 짐이 다 나오도록 정호씨 배낭은 보이질 않는다. 나와 같은 비행기로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셈이니 분명 내 짐과 같이 있었을텐데 왜 안나올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짐나오는 곳을 찾아다녔더니 엉뚱하게도 짐나오는 곳 뒤에 대차에 실려 있다. 배낭을 라면상자 두 개로 싸서 테이프로 밀봉해 붙였더니 중요 물품인줄 알고 대차에 실어 갔다 놓은 것인데, 엉뚱한 곳에서 계속 찾고 있어던 거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시간을 지체했으니 급한 사람이 더 급하게 됐다.

 

 공항 리무진을 탈까 했는데 버스비가 컥...15유로. 무지 비싸다.

 

 파리 지하철이 너무 복잡해서 네이버에 있는 카미노 카페에서는 공항버스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했는데, 아침 출근 시간이다보니 버스로 이동해서는 정호씨가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하다. 결국 정호씨가 예전에 파리에 완본적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10유로를 주고 표를 받았는데 엥 거스름돈이 동전뿐이다. 어떻게 된거지. 동전 금액을 천천히 확인해본다. 1유로 하나와 10센트 1개 20센트 1개. 생전 처음 보는 유로화 동전이라 다시금 확인해보지만 거스름돈은 분면 1.3유로다. 10유로면 우리나라 돈으로 만 오육천원인데 잔돈만 주다니 너무나 황당해서 지하철 표를 봤다. 지하철 표에 8.7유로라 찍혀 있는 금액이 눈에 들어온다. 컥, 뭔 지하철 표 값이 이리도 비싸다냐. 정말 우리나라 대중교통비가 싸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애매하자 정호씨가 약국을 찾아가는 걸 포기해서 몽빠르나스 역까지 같이 왔다. 그 복잡하다는 파리 지하철을 정호씨 덕에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다. 혼자서 왔다면 분명 한참을 헤맸을 거다. 경험자가 있으니 역시 편하다.

 

 아무래도 배낭을 매고 화장실을 가기는 불편해서 정호씨가 떠나기전에 짐을 잠시 부탁하고 화장실을 갔는데 여기서 또 놀라고 말았다. 역사 내에 있는 화장실이 유료. 그것도 50센트나 받는다. 화장실 한번 사용에 800원이라니... 계속해서 파리에 대한 이미지가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남들에게는 예술의 도시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냥 쓸데없이 돈만 먹는 비싼 도시로 남게 되지 않을까.

 

 정호씨가 떠나고 혼자 몽빠르나스 역에 남아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은 쌀쌀한 파리의 날씨. 서울이라면 가벼운 마이 하나 걸치고 돌아다닐 정도다. 추위라면 무지타는 내가 그냥 긴팔 등산복 하나만 입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목도리에 파카에 심지어 코트까지... 예전에 영하도 아니고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졌다고 동사한 사람들이 나왔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그 뉴스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대합실 전광판에 드디어 내가 탈 기차의 탑승 게이트 번호가 나왔다. 후다닥 짐을 챙겨 갔는데 열차 표를 보고도 차량을 못찾겠다. 차량 번호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찾지를 못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곳 사람들은 알아서 잘도 간다. 모를 때는 묻는게 상책이다. 예전에 캐나다 여행할 때 깨달은 것이 현지인에게 묻는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는 거였다. 괜히 머리를 굴려봐야 제대로 된 답도 안나올뿐더라 시간만 잡아먹는다. 영어를 할만한 40대 아저씨 한분을 붙잡고 표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뭐라고 설명을 하시는데 불어를 내가 어떻게 알아듣냐고. 내가 이해를 못해 난감한 표정을 짓자 방법을 바꾸신다.

 바로 앞에 있는 열차 차량을 가리키며


 “one"


 그리고는 옆에 차량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two, three, four"


 그러더니 나에게


 “four, ok?"


이렇게 설명하는데 못알아들으면 바보겠지. 역시 만국 공통어 못짓 발짓 바디 랭귀지가 최고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아저씨가 가리킨 네 번째 차량으로 부리나케 갔다. 차량을 찾았으니 좌석만 찾아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KTX 열차와 같은 TGV(떼제베)인데 내부 인테리어가 다르다. 좌석 번호가 어디 있는지 또 못찾고 헤맨다. 뒤에 오던 여성분에게 표를 보여주니 좌석을 찾아주신다. 결국 게이트 들어와서 세 번을 물어 좌석에 앉았다. 기차 한번 타기 정말 힘들다. 아 역시 파리는 나하고 안 맞는 도시인것 같다.


 파리 몽빠르나스역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갈려면 바용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TGV(떼제베) 열차라서 역을 한번 지나치면 그 거리가 무지 크다. 갈아타는 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차표에 적힌 도착시간 4시쯤 돼서는 신경이 곤두선다. 차장이 방송하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단 한단어 ‘바용’이라는 말만은 정확히 들렸다.

 

 바용역에 내리고 나니 어디서 생장프드포르행 기차를 타는지 알 수가 없다. 대기 시간이 한시간 이상 남았고 플랫폼 번호도 모르니 역 밖으로 나가서 쉴수 밖에 없다. 지하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계단을 다 올라갔을 때 출구 바로 앞에 동양인이 한명 보인다. 나보다 더 큰 배낭을 배고 있는 앳된 청년. 얼굴 느낌만으로 한국사람이란게 표가 난다.


 ‘이 청년도 산티아고 가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쳐 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where are you from?"


 뭐야, 이녀석. excuse me. 실례한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where are you from? 이라니. 잠시 황당해 하다가 그냥 직감대로 말해버렸다.


“한국분이세요?”


내 말에 청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너무나 반가워하며 이제 살았다는 표정. 바로 그것이다. 역사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청년이 자초지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름 O민호, 올해 24세로 대전에 살고 있는데, 형이 가보라고 해서 산티아고 길을 왔다고 한다. 파리에서 기차를 탔는데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프랑스 역무원들이 영어가 아예 안되다보니 그냥 생장가는 표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장피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라고 정확히 말해야 하는데 민호가 생장이라고만 말하니 역무원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근처의 Saint jean de Luz로 가는 표를 준 것이었다. 자신이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바용을 지나친 후에야 알게 돼서 바용 다음역에서 내려 다시 돌아오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혼자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집에 전화하고 있는데 내가 나오는것을 보고 다짜고짜 들이댔다고 한다. 생전 처음 나온 해외 여행이니 이렇게 헤매는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일반적인 관광이 아닌 고행길 산티아고 길을 왔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형이 가라고 해서 왔다는 것이나, 자신이 가야 할 지명을 정확히 모르고 있고, 더구나 가져온 짐 양이 어마어마하다. 뭘 모르고 와도 제대로 모르고 왔구나 싶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데 역내에 여성 두 명이 들어온다. 등산화를 신고 배낭에 스틱 두 개씩 매단 것이 딱 봐도 산티아고 가는 차림새인데, 일본인 같기도 하고 한국인 같기도 하다. 어찌할까 고민하는데 그분들이 뭘 열심히 보고 있다. 뒤로 살짝 돌아가서 슬쩍 훔쳐보니 내용은 알수 없지만 쓰여진 글자는 분명 한글이다. 또 한국인! 홀로서기를 하려고 떠나왔는데,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할 수 없는 시기라 생각하고 선택한 시간에 산티아고 길을 시작도 하기전에 줄줄히 한국인들을 만나고 있다니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민호를 버리고 갈수 없으니 같이 다닐수밖에 없다. 어차피 생긴 일행이라면 한명이나 여러명이나 차이는 없다. 그렀다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일지 모른다. 그냥 가서 인사를 해버렸다.


“한국분들이시죠. 산티아고 가세요?”


내 질문에 그 분들도 나를 쳐다본다. 그들도 이런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신기한 것 같다. 43세의 왕언니 O소화 누님과 30세의 경남처녀 O지영씨. 단발머리의 소화누님은 바지로 된 정장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캐리어우먼의 느낌이 나고, 아담한 키의 긴 생머리를 한 지영씨는 약간의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쓰는게 귀여운 아가씨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민호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민호와 내가 만난 얘기에 소화누님과 지영씨도 웃고 만다. 민호가 얼마나 급했으면 다짜고짜 ‘where are you from?'하며 내가 들이댔겠냐고 하자 지영씨는 자기는 인천공항에서부터 소화누님을 데리고 왔다고 하면서 여기 온 과정을 설명한다.

 

 소화누님은 패키지 여행은 많이 다니셨지만 자유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은데 어떻게 올지 몰라서 여행사를 끼고 비행편과 숙박시설을 예약했는데, 소화누님과 같은 일정으로 지영씨도 같은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예약할 때 여행사 직원이 같은 일정으로 가는 분이 있다며 인상착의를 알려줬는데 인천공항에서 딱보고 소화누님인줄 알아봤다고 한다. 그때 소화누님 식구들이 마중을 나왔는데 자기가 같이 가는걸 보고 안심하고 돌아갔다나. 소화누님이 상당한 길치라 무척이나 걱정했다고 한다. 마흔 넘은 어른을 서른살 아가씨한테 맞기고 안심했다라. 왠지 웃음이 나온다.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덧 생장피드포르행 기차를 탈 시간이 됐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달랑 한칸짜리 기차가 서 있다. 분명 생장피드포르행이라고 써져 있다. 생장피드포르행 차편이 하루에 몇 번 없다 했는데, 기차를 보는 순간 그냥 이해가 되버렸다. 기차에 오르는데 열차 안에 앳된 동양인이 한명 앉아서 뭘 쓰고 있다. 얼핏보니 또 한글이다. 어떻게 장소를 옮길때마다 한국인을 만나다니 여기가 프랑스 맞나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처음에 남자 고등학생정도로 봤는데 알고보니 독일에서 유학중인 23세의 여성 O해인씨였다. 머리를 남자처럼 바짝 짤라서 남자아이인줄 알았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여성이 맞다. 해인씨는 독일에서부터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는데, 우연히 산티아고 길을 알게되서 이쪽으로 왔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1시간여쯤 가는 동안 기차 안에는 한국인 5명이 떠드는 수다소리가 울려퍼졌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온 사람들이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다니 인연이란 정말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장피드포르 역에 도착해서 조개 껍데기 표시를 따라 카미노 협회를 찾아갔다. 거의 8시가 다된 시간인데도 아직도 줄을 서서 순례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나름의 판단으로 비수기라 생각해서 온 것인데 나만의 착각이었던것 같다. 이리도 많은 순례자라니...에휴

 

 협회에서 2유로를 주고 크레덴시알을 만들었다. 조개껍데기 장식도 하나 골라 배낭에 매달았다. 협회 자원봉사자 어르신들이 카미노 일정표를 나눠주면 뭐라고 설명을 하시는데 내 영어 수준도 미달이지만 이분들의 프랑스식 영어 발음 때문에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생장피드포르는 특이하게도 협회에서 알베르게를 지정해 주는데, 자원봉사자 어르신의 말로는 다른 알베르게는 다 찼고 지금 남은 알베르게는 12유로 짜리만 남았다고 한다. 이미 어두워진 늦은 저녁에 말도 안통하는 프랑스 산골 마을에서 무슨 수가 있나. 우리 일행보다 앞서 크레덴시알을 받았던 이탈리아인 3명까지해서 8명이 지정해준 알베르게로 찾아갔다.

 

 알베르게는 바(bar)를 겸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바의 2층이 도미토리 룸이다. 이탈리아인들이 먼저 숙박료를 지불하고 방으로 갔다. 뒤이어 우리가 숙박료를 지불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도미토리 룸이 아닌 따로 떨어져 있는 집으로 안내를 하더니, 도미토리 룸이 다 찼다고 3층을 우리 일행보고 사용하라고 알려준다. 올라가 보니 1인용 침대가 2개씩 비치된 방이 2개고, 샤워실, 그리고 복도에 침대가 2개 비치되어 있다. 이정도면 12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다. 만약에 숙박료를 먼저 지불했다면 우리가 도미토리룸에 들어가고 이탈리아인들이 여기를 쓰고 있겠지. 어딜가나 줄을 잘서야 한다.

 

 파리에서부터 같이 지냈기에 자연스럽게 지영씨와 소화누님이 한방을 차지했고, 다른 한방은 해인씨가 홀로 사용하기로 했다. 민호와 나는 복도에 비치된 침대를 하나씩 점거했고.

 

 집을 떠나기전에 새벽에 샤워를 한 뒤로 48시간이 훨 넘어서 샤워를 해본다. 몸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샤워를 하고나니 배가 고파온다. 새벽에 비행기 안에서 먹은 기내식 빼고 오늘 하루종일 먹은거라고는 초코바 한 개가 전부니 지금까지 배고픈줄 모르고 온것이 신기하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데, 민호가 자기한테 햇반이 있다고 한다. 햇반이라니... 다른 곳도 아니고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오면서 배낭에 햇반을 챙겨왔다니... 그제서야 민호의 큰 배낭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뭘 넣어온거길래 저리도 큰 걸까?

 

 민호 짐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갈아입을 면티가 대여섯벌. 산티아고 길은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보통 2벌 가지고 번갈아 갈아입는데 참 많이도 준비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래 그럴수도 있지 했는데, 그 다음에 나온 햇반 8개에 참치캔 6개. 구급약 통은 이건 뭐 집안에 있는 약이란 약은 다 들고 왔는지 거의 구급상자수준이고 가장 압권은 큼지막한 물티슈 한통이었다. 거기다 앞으로 매고 가져온 작은 가방에는 두꺼운 책이 3권이다. 이건 해외여행이 아니라 그냥 여행 초짜중에서도 완전 초짜다.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다.


“너 짐무게가 대충 얼마냐?”


내 질문에 민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대충 18kg 정도 되는것 같아요”


흐미 18kg라니. 보통 8~10kg 정도로 짐을 꾸리는데, 그것도 수통에 물을 채운 무게로 말이다. 지금 민호 짐에서 수통에 물을 채운다면 거의 20kg. 이건 뭐 군장 매고 전투행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이건 말이 안나오는 수준이다. 짐무게도 헉소리가 나올 지경인데 배낭을 싸는 기본도 모르고 있다. 가벼운 짐과 무거운 짐이 두서없이 섞여 들어가 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놈 이거 내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러면서도 이걸 매고 어떻게 내일 피레네 산맥을 넘어간단 말인가 걱정이 된다.

 

 결국 나서서 배낭을 다시 싸줬다. 우선 면티 버리고, 물티슈도 당연히 버리고, 가져온 햇반과 참치캔은 우리가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다 먹어서 없애기로 하고, 이것저것 정리한후에 가벼운 짐부터 무거운 짐 순서로 하나하나 다시 정리를 하니 얼추 모양이 잡혀간다. 그런데 끝까지 책은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부피로는 얼마 안되지만 책 3권이면 대충 2kg이 넘는데, 그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민호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결국 책은 민호 고집대로 하게 두었다. 내일 피레네 산맥 넘고 나서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민호가 가져온 햇반과 참치캔 그리고 고추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돌아갈때까지 밥구경은 못할줄 알았는데, 하루도 안지나 바로 밥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혼자 낯설은 이국인들 틈에서 고독을 씹고 있을줄 알았는데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있게 되고. 내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국에서의 첫날이다.


 이틀만에 허리를 펴고 자니 기분이 너무 좋다. 내일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푹 쉴려고 했는데, 그놈의 쥐가 또다시 났다. 피곤하면 가끔씩 발에 쥐가 나는데 이번에는 동시에 양발에 쥐가 났다.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피곤하기는 무지 피곤했던것 같다. 비행기에 기차에 계속 앉아서 이틀을 보냈으니...

 한쪽 발이면 어떻게 해보기라도 하겠는데 동시에 양발에 쥐가 났으니 혼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자다가 갑자기 당했으니 무슨 정신이 있을소냐. 그냥 비명을 질렀다.

 

“민호야!, 쥐! 쥐~”


내가 비명을 질러대도 민호녀석 꿈쩍을 안한다. 이녀석 깊이 잠드는 스타일인가. 도리어 안쪽 방에서 소화누님이 나와서는 날 도와주신다. 그제서야 다들 놀라서 잠에서 깬다. 내 비명소리를 처음에는 잠꼬대인줄 알았다나. 해인씨는 진짜 쥐가 나온줄 알고 놀라서 방을 살피고 있었다고 하고 지영씨는 무슨 남자가 쥐 하나가지고 저리 호들갑떠나 생각했다고 한다. 다리에 쥐가 난건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다행히 소화누님 아버님도 가끔씩 쥐가 났었기 때문에 누님이 상황을 빨리 이해하고 나와서 풀어줬기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중에 다들 그런 말을 한다. 한밤중에 쇼를 한 덕분에 서로에 대한 어색한 낯설음이 사라져 버렸다고. 나는 고통으로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