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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고니* 2013. 3. 11. 13:02

10월 23일

폰세바돈(Foncebadon) -> 폰페라다(Ponferrada) 27km

 오늘도 새벽 1시부터 눈을 떠버렸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숙면을 취해본적이 몇 번 안되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6시까지 일어나지 말라는 공지문 때문에 억지로 침낭속에서 버텨보지만 화장실까지 어찌하랴. 결국 5시에 일어나 조용히 1층으로 내려간다. 벽난로의 불씨는 완전히 죽어있다. 불을 붙이고 싶지만 라이터가 없다. 비행기를 타느라 라이터를 빼놓고 왔는데, 취사도구도 안가지고 오다보니 라이터를 구할 생각을 안했다. 뭐든지 없으면 꼭 아쉬워지는 순간이 온다.

 

 6시까지 버티고 짐을 싸기 시작하니 주인아저씨께서 커피와 우유를 데워서 가지고 오신다. 아무래도 벽난로를 지펴야 할 것 같다. 벽난로 주변에 마른 장작이 보이지 않아 밖에 나가 장작을 가져오고 주인아저씨한테 성냥을 빌린다. 신문을 찾아 불피우기를 시도하지만, 장작이 새벽이슬에 젖어있어 불이 붙지 않는다. 밖에 나가 마르고 작은 가지들을 골라오니 주인아저씨께서 양동이 가득 마른 장작을 가져 오신다. 종이 박스도 한 개 가져와 찢어주신다.


“I am your supporter. best supporter."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정말 최고의 조수다. 다시 불붙이기에 도전한다. 역시 마분지와 마른장작을 이용하니 불이 잘 붙는다.


“오빠, 서울 촌놈이네”


서울서 만 산 내가 장작에 불을 붙였더니 서울 촌놈이라고 보아가 농담을 한다. 아무리 도시에서만 살았다고 해도 MT가면 캠프파이어 다들 하는데 불 하나 못 붙일까. 벽난로 불길에 찬기운이 가시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새벽부터 오들오들 떨었던 몸이 녹는다.

 

 아침은 거의 뷰페 수준이다. 시리얼에 과일에 요거트, 커피, 티, 각종 햄에 바케트까지. 3유로 내고 무한 리필이다.

 

 이 길을 올때 계획했던 것 중 하나가 이 곳이나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서 일출을 보는 거였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오늘 일출 구경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벽난로 기운에 등 따시고 배부르니 떠나기가 싫어지지만 그래도 계획한건 해야지. 일출을 보기 위해 동 트는 것을 가늠하다 출발하는데 산으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짙어진다. 이러면 일출을 볼 수 없는데.

 

 더 올라가면 산을 넘어가기 때문에 일출을 보기 힘들것 같아, 산등성이를 넘어가기 전에 멈춰서서 일출을 기다린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냥 가는데 보아가 일출을 보겠다고 남는다. 보아가 뭘 캐물을려고 내게 붙었을까 싶어 은근히 무섭다. 금방 떠오를 줄 알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일까 해가 솟는게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세게 불고, 빗방울도 간간히 날려 춥다. 나야 그래도 중무장을 했으니 버틸만하지만, 보아는 옷이 얇은편인데 춥지 않을려나 걱정이 된다.

 

 대학시절 소모임 여자 동기의 말이 생각난다.


“여자가 춥다고 할때 어떻게 해야 하는줄 알아?”

“뭐 옷 벗어줘야 한다고..”

“땡. 우리 교수님이 옷벗어주는 남자는 차버리래. 꼭 끌어 안아주는거 그게 정답이야”


 갑자기 그 생각이 왜 났는지. 보아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랬다가는... 헛웃음만 나온다. 나란히 서서 일출을 기다리며 보아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일출을 좋아하고, 안정된 것을 즐기는 사람은 노을진 석양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혹자는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은 일출을, 삶을 정리하는 노인들은 석양을 좋아한다고도 말한다. 그래서일까,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또는 우울할 때 산에 올라가 일출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가장 많이 간 곳이 설악산 대청봉. 가족이나 친구랑 같이, 아니면 그냥 혼자 올라가 일출을 봤지만 여자와 가본적은 없다.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일출을 보면서 프로포즈하겠다고 나름의 계획을 세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아와 단둘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멀리 산 아래의 아스토르가는 운무인지 안개인지 모를 회색의 장막에 묻혀 있고, 위로는 시꺼먼 구름들이 쫙 깔려 있다. 단지 정면으로 멀리 하늘이 조금 보일뿐이다. 이런날 일출을 볼수 있을까 걱정이 됐는데, 아스토르가 방향에서 붉은 뭔가가 꿈틀되기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회색 장막의 끝에서 해가 솟아오를줄 알았는데, 장막 중간에서 새빨간 덩어리가 서서히 올라온다. 동해바다나, 설악산 대청봉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일출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못 봤으면 너무나 후회했을 장면. 보아도 너무나 환상적이라고 좋아한다. 아마 영원히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되리라.

 

 

 붉은 태양을 뒤로 하고 산을 넘어 가니 크루즈 데 페로(Cruz de Ferro)의 십자가가 앞에 보인다. 수북히 쌓인 돌무더기 위에 전봇대 마냥 삐죽하게 서 있는 십자가. 흐린날씨탓일까, 마치 돌무덤 같아 보인다. 이곳이 왜 산티아고 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크루즈 데 페로를 지나 산을 넘어 가니 허물어질 듯한 집에 태양광 발전기를 달아둔 곳이 나온다. '만하린(Manjarin)' 마을 이름인지 집 이름인지 구별이 안된다. 멕시코 시티등 여러 도시까지의 거리와 방향이 적힌 나뭇 팻말이 있는데, 서울은 없다. 만하린에서 일행을 보지 못했는데 멀리 파란 점퍼가 보인다. 저거 용만인가? 일출을 기다리며 시간을 많이 지체했는데 이것밖에 거리가 안 벌어졌다는게 뭔가 이상하다. 만하린에서 쉬어 가는 건가? 보아와 내기를 한다. 난 만하린에서 쉬고 가는거에, 보아는 쉬지 않고 간다에 건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이런 짓이나 하고 있고, 확실히 우리는 순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어제 언니가 그러던데, 오빠랑 얘기하는거 재밌다고. 얘기 좀 해봐요”


 어제 현정누나랑 오면서 계속 수다를 떨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편이 아닌데 무슨...  산을 내려가며 보아와 대화를 한다. 단 둘이 대화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밌는 말을 해달라지만 그런 쪽으로는 재주가 없다보니 얘기는 이상한 쪽으로 흐르다 어떻게 옛사람 얘기가 나와 버렸다.


“난 그 사람이 행복하길 빌어. 안 그러면 떠나온 내가 더 비참할 것 같거든”

“저도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해요”


 나야 내가 더 다가서지 못하고 멈춰버렸으니까 뭐라 할말 없지만, 보아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사람이 행복하길 빈다. 그 심정이 어떨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사람 생각하는것만으로도 슬펐는데,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정작 말을 하면서 울먹일려는 걸 억지로 참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나 추억이 많았으면 생각하는것만으로 저렇게 될까. 상처를 주고 떠나간 사람을 아직도 추억하고 있다니 얼마나 사랑했으면. 솔직히 보아한테 그런 사랑을 받은 그 사람이 부럽다. 보아의 슬픔이 느껴져서일까 가슴이 먹먹하고 보아가 안쓰럽다. 저 상처가 빨리 아물어 없어지를 바라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다른 주제로 대화를 계속하는데 보아가 깜짝 놀란다.


“오빠, 장갑 흘려나봐요”


보아가 주머니에 꽂아 뒀던 장갑 하나가 없어졌다. 출발할 때는 끼고 있었으니 오는 도중에 떨어진거다.


“어떻게, 좀 돌아가서 찾아볼까요?”

“됐어요. 게도 지 갈길 찾아 갔겠죠”


 보아는 됐다고하지만, 장갑이 없으면 당장 내일 아침부터 힘들어진다.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미켈씨가 오는게 보인다.


“혹시 저분이 주워오지는 않을까?”

“설마요. 됐어요. 그냥 가요”


언제 흘렸는지 알수 없으니 되돌아가는건 무리지 싶다. 미켈씨가 가져오면 속된말로 정말 대박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까? 폰페라다 들어가서 장갑이나 하나 사줘야겠다.

 

 만하린 다음 마을을 향해 가는데 화장실이 급해진다. 일출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장시간 걸었으니 화장실 갈때도 됐지. 만하린에서 화장실을 보고 오는건데 그냥 지나친게 후회된다. 얼마나 남았나 봤더니 만하린에서 다음 마을 엘 아세보(El Acebo)까지는 7km다. 지금 얼마나 걸었는지 가늠이 안되는데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먼저 가요. 나 실례좀 하고 갈께요”

“나도 보고 싶은데 참고 있어요. 오빠 혼자 편해지면 어떻해요. 참아요”


 진짜 급해 죽겠는데, 참으란다. 가끔 느끼지만, 보아 너무 무섭다. 어떻게 참아볼려고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걸 어떻게 하냐고. 좀 더 가다가 안되겠어서 보아를 먼저 보내고 결국 실례를 해버렸다. 혼자 걸어야 이런것도 마음대로 해결할텐데 어째 보아가 오늘은 종일 붙어 있을 심산이다.

 

 고개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밑으로 마을이 보인다. 엘 아세보. 고개에 가려 안보였는데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마을 bar에 들어갔더니 일행들이 쉬고 있다. 용만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핸드릭스 진(Hendrick's Gin)이 있다고 정오도 안됐는데 술판을 벌렸다. 무서운 놈.


“누나, 만하린에서 쉬고 왔어요?”

“아니, 우리 그냥 곧장 왔는데. 왜?”


 내기를 끝내야 해서 물어봤는데 결과는 참패다. 그럼 내가 본건 뭐였지. 알고보니 사진찍는다고 뒤처지셨던 아버님을 본거였다. 용만이하고 아버님하고 둘다 파란색 점퍼인데, 그걸 깜빡했다. 왜 아버님 생각을 못했을까. 내기에 이겨서 기분이 좋아보이는 보아를 보니 내기에 진게 도리어 잘됐다 싶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보아가 나오면서 장갑을 보여준다.


“오빠, 미켈씨가 내 장갑 주워왔어요”


아까 그냥 한말인데, 정말 말이 씨가 됐다. 어떻게 이런일이...


“게가 아직은 다른 길 갈 생각이 없어나 보네요”


 보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누구나 웃는 모습이 이쁘지만, 보아는 웃는 얼굴이 특히 이쁘다. 환하고 밝은 미소가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그래, 그렇게 웃고 살어. 안에 꽁꽁 숨겨둔 슬픔은 탈탈 털어내고.

 

 

 엘 아세보를 떠나면서 지영이는 발이 아프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앞서 간다. 천천히 가면 더 힘들다나. 아니 아프면 천천히 가야지, 누가 구라 지영 아니랄까봐. 지영이가 앞서 가버려 용만이, 보아, 현정누나와 나란히 다음 마을로 가는 내리막길을 걸어간다. 용만이는 낯술을 찐하게 하더니 술냄새를 팍팍 풍겨주신다.


“전 주사 없어요. 술취히면 목소리 커지고 말 많아지는 정도지 다른 주사 없어요”


 주사가 말 많아지고 목소리 커지는 거라는데 원래 크고 말 많으니 주사인지 구별이 안된다. 걸음걸이가 조금 풀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뭐 이렇게 계속 수다 떨면 술도 다 깨겠다.

 

 

 다음 마을인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까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그 다음부터는 산길로 내리막이다. 딱딱한 아스팔트길과 돌바닥 길을 계속 걷다보니 발에 불이 난다. 몇일째 평지만 걷다보니 발이 벌써 편한데 익숙해졌나보다.

 

 오늘 목표 폰페라다가 멀리 보여 이제 다 왔다 좋아했더니 신시가지를 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주 멀리 빙 돌아서 도시로 들어가게 화살표가 되어 있다. 그냥 도로를 따라 갔으면 금방 갈 거리를 화살표만 따라가다보니 한참을 가서야 도시에 들어선다. 간만에 발에 불나고 장딴지 근육에 약한 경련이 인다.

 

 폰페라다에 하나뿐인 알베르게는 2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시설이다. 그런데 오는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해 준다. 용만이가 아버님 자리를 같이 달라고 하는데 말이 안통하는건지 원래 안되는건지 자원봉사자가 난색을 표한다. 이럴 때 앨빈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떼를 쓸수도 없고 이일을 어쩌나 하는데 타이밍 기가 막히게 아버님이 도착해서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됐다.

 

 전에 만났던 야구모자를 쓴 청년과 부산아가씨, 그리고 아저씨 팀을 다시 만났다. 큰 도시에는 중국인 식당이 있고, 밥 종류 식사가 보통 4~5유로로 싸다며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할거라며 나간다. 싸면서 입맛에 맞는 중국요리라. 군침이 돌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스페인 식당들과 똑같은 8시라는게 문제다. 그때까지 굶으면 돌아가시겠다. 중국 식당은 간단히 제쳐주시고 알베르게에 붙어 있는 지도를 토대로 슈퍼마켓을 찾아간다.

 

 오늘의 메뉴는 삼겹살. 삼겹살과 비슷해 보이는 고기를 사고 - 기름이 무지 많다는 점만 빼면 괜찮았다 - 쌈 싸먹을게 없으니 양상추를 사고 - 양배추를 삶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패스 - 용만이는 내일 아침 핫도그를 해 먹자며 토마토 케찹과 머스타드 소스를 산다. 이미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까지 2병이나 가지고 다니면서 또다시 양념통을 늘리다니, 진정한 미식가라고 해야하나 짐무게 상관없는 괴물이라고 해야하나.

 

 알베르게에 돌아와 여자들이 밥을 하는 동안 일기를 쓰는데, 프랑스에서 온 아저씨 한분이 한국남자들은 식사 준비를 거들지 않는다며 나에게 뭐라고 하신다. 한국어 발음을 참 잘하시는 분인데 한번 말해주면 바로 따라하는 대단한 아저씨다. 여하간 여자 셋이 주방에 붙어 뚝딱거리는데 내가 거기 껴서 뭘 하란 말인가. 거슬리기나 하지. 이따 삼겹살이나 구우면 되는 것을. 이럴때는 의사 전달을 정확히 할 수 없는 것이 좀 그렇다.

 

 밥이 다 된 후에 양파와 버섯을 썰어 준비 해놓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니 그 아저씨 내가 잘한다고 이제는 칭찬을 하신다.  어제 아일랜드에서 오신 미켈씨도 그렇고 이 아저씨도 그렇고 언제나 미소를 띄고 있는게 참 보기 좋다. 서양 사람 대부분이 그런건 아니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인상이 좋고 격어보면 즐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고기 굽는다고 전기렌지의 한 쪽을 장악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기가 좀 어려워졌다. 계속 틔는 기름에 당황해 하는 사람들. 그 기름에 내 손은 기름 범벅. 내 손이 튀겨지겠다. 보아가 자기가 굽겠다고 하는데, 고운 여자 손에 기름 틔는 거 보는 것도 그렇고. 이미 버린몸 나 혼자 고생하는게 마음 편하다. 내가 계속 구워 나르기만 하고 있으니 보아가 틈틈이 고기 한점씩 가져다 먹여 준다.


“이젠 주는대로 잘 먹네요”


 날 이렇게 길들인게 누구였더라.

 

 마트에 있던 삼겹살 비슷한 고기를 다 긁어왔는데도 원래 생각했던 양보다 적어서 모자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더구나 마트에서 돌아와보니 민호와 소화누님, 어머니까지 다 와 계셨다. 고기가 모자르겠구나 했는데, 고기가 두꺼워서일까, 아니면 기름이 너무 많아서, 그것도 아니면 굽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배가 불러서일까 정확히 맞게 끝이 났다. 휴, 다행.

 

 아까 알베르게 침대 배정할때도 깐깐하던 관리인 아저씨가 식사하는 중간에도 계속 눈치를 주신다. 마음약한 현정누나와 보아는 식사를 다 하지도 못하고 눈치가 보인다면 밥했던 조리기구들을 설거지 한다. 저 아저씨, 뭐가 못마땅해서 저러는 걸까. 스페인어만 할 줄 알면 가서 따져 묻고 싶다.

 

 오늘 내리막 길을 내려왔기 때문일까 허벅지가 안 좋아서 용만이에게 마사지를 부탁한다. 내 자리가 2층 침대 위쪽이다 보니 밑에 침대를 실례하고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자리 임자가 들어온다. 마사지 받으며 저절로 나오는 신음소리에 웃음을 짓더니 계속 하라고 한다. 분명 몸상태로는 왼쪽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이었는데, 용만이가 만져보더니 오른쪽이 더 심하게 뭉쳐있다고 오른쪽을 집중적으로 마사지한다. 마사지를 받으며 느껴지는 고통은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심하다. 내가 느끼는 것과 실제 몸 상태가 다르다는 것, 참 신기하고 묘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근육파열같이 큰 병을 얻게 되는 것이겠지. 보고 느끼는 것과 실제는 차이가 있다는 거. 내 몸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인생도 다 그런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가는거, 그게 연륜이겠지만, 아직 나에게는 어렵기만 하고 안개가 낀듯 베일에 쌓여 있다.